항상 의문이었던 것이 있었다. 왜 우리나라는 일본을 지배하지 못하고 지배를 받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고 어렴풋하게 해답을 찾았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이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라는 뉴기니 친구 얄리의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이 책은 인종, 문명 간의 힘의 차이가 생물학적 특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환경적인 차이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고고학적, 역사적, 지리적 증거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여러 의문들에 대한 정답이 딱딱 맞춰지는 느낌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었을 때처럼 쾌감을 주었다. 천재들은 통하는 데가 있는가 보다.
1520년 경에 스페인의 군대가 아메리카 대륙의 최강 잉카문명과 부딪쳤다. 스페인 군대 160여 명은 강철검, 투구, 갑옷으로 무장하고, 총과 말을 보유하고 있었다. 잉카제국은 수십 만 명의 숫자에 돌도끼, 돌팔매 등과 같은 신석기 무기만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무기의 차이가 있었다고는 하나 160명과 100,000명은 너무 엄청난 차이이다. 한 명이 600명이 넘는 원주민을 대적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실제 모습을 봤다면 160명의 승리에 돈을 거는 도박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단 한 번의 충돌로 잉카제국은 멸망해 버렸다. 첫 전투에서 잉카황제 아타우알파를 잡아버리고, 그 후 스페인 군대와 함께 들어온 병균에 의해 잉카제국은 사라져 버렸다. 잉카인들은 총소리에 너무 놀라 스페인 군대를 신의 사자로 보고 공격하지 못했다. 천연구, 홍역, 결핵등에 면역성을 가진 스페인 군대와 달리 잉카인들은 그런 균을 처음 접했고, 그 결과는 무기에 의한 살육보다 더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쇠를 다루는 기술로 투구, 강철검을 가진 스페인 군대를 돌도끼나 돌팔매로 죽이기는 쉽지 않았다. 저자는 이런 결과를 가져온 근본적인 원인이 총, 균, 쇠에 있다고 보았고, 유라사이가 이것들을 빨리 습득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를 하나씩 풀어나간다.
일단 이야기에 앞서 하나 알려둘 점은 저자는 인종이나 종족 간 차이보다는 대륙간의 차이에 대해서부터 설명한다. 그래서 유럽과 중국을 하나로 묶어 유라시아대륙이라 칭하고, 유라시아가 다른 대륙보다 총, 균, 쇠와 같은 힘을 먼저 가질 수 있었던 부분에 대해 설명한다. 우리는 아시아가 유럽에 의해 유린된 역사를 알고 있지만, 이 책은 유럽과 아시아가 동시에 힘을 가지게 된, 아니 아시아가 유럽보다 더 강한 힘을 가졌었던 1500년 이전의 시대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길 바란다.
하나 더 알려둘 점은 현생 인류와 동일한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아메리카와 호주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그 시기에 맞춰 아메리카와 호주의 대형동물들이 멸종하게 된다. 호주는 대략 4만 년 전의 진출로, 아메리카는 B.C.11,000년 경 정도로 추정한다. 이 사건은 이후에 발생하게 되는 잉카제국의 멸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야기는 B.C. 11000년 경부터 시작한다. 이 시기는 사람이 살지 않던 대륙인 남북아메리카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기이다. 첫 이주자는 시베리아와 알래스카를 잇는 베링해협을 건너왔다고 추측한다. 베링해협은 지금은 바다이지만, B.C. 11000년 홍적세 말기에는 빙하기여서 해수면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배의 출현에 대한 증거가 몇천 년 후에 나타난 걸로 봐서 육지를 걸어서 이동했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가정이라 할 수 있다. 그 후 남쪽으로의 확장이 계속됐고, 1000여 년이 더 지났을 때는 남북아메리카 전체에 인간이 고루 분포해 살았다. 호주를 포함한 전 대륙에 인간이 살게 된 것이다.
그러면 왜 유라시아만 그렇게 발전할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저자는 식물의 작물화와 동물의 가축화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현대의 중동지역 중 이스라엘, 쿠웨이트, 이라크등에 넓게 걸쳐있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 불리는 지역이 있다. 이 지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B.C.8500년 경부터 식물의 작물화와 가축화가 이루어졌다. 식물로는 밀, 완두콩, 올리브 등이 작물화되었고, 가축은 양, 염소, 돼지, 소 등이 가축화되거나 주변에서 유입되었다. 다른 지역도 가축화와 작물화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그 종류와 수가 턱없이 적었다. 아메리카의 경우는 옥수수 한종만 작물화되었고, 야생옥수수가 현대의 옥수수 모습을 갖추기까지 수천 년이 걸렸다. 동물은 앞서 얘기했듯이 아메리카에 인간의 발길이 닿았을 때, 대형 포유류들이 멸종했기 때문에 가축화할 대상이 없었고, 그나마 라마 한 종만 가축화할 수 있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식물을 잘 보면 영향적으로 효율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밀은 탄수화물, 완두콩은 단백질, 올리브는 기름성분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영향 밸런스가 잘 맞았다. 반대로 아메리카 대륙은 옥수수와 참마 같은 작물만 야생에 존재했고, 작물화되었기 때문에 영향 밸런스가 좋지 않았다. 당연히 초승달 지대에는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었고, 아메리카는 그러지 못했다. 이 상황은 인구 밀집효과의 차이를 가져오게 된다. 인구 밀집효과는 식량생산을 하지 않는 전문가를 먹여 살릴 수 있어서 기술 개발이 활성화되고, 군대와 같은 특수 집단도 운영할 수 있게 되어, 주변 문명을 흡수해 제국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인구밀집화와 가축화는 가축으로부터 전해진 균을 활성화하게 되어 많은 균들을 보유하게 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균에 대한 면역성을 가지게 된다. 이런 현상들은 식량생산 증가, 인구밀집 증가, 지속적인 기술개발, 균에 대한 면역성 강화에 되먹임 현상을 주게 되어 사회구조는 점점 복잡해지고 강력해지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이 처음 그 지역에서 작물화할 수 있는 식물과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의 종류에 따라서 강화되거나 약화된다고 얘기했었다. 그런데,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이런 작물, 가축, 기술 등에 대한 확산이 얼마만큼 잘 이뤄질 수 있느냐이다. 그러면 확산의 원인이 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책에서는 지구의 위도에 대한 부분과 환경, 생태적인 부분은 주요 인자로 설명한다. 먼저 위도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면, 같은 위도에 위치할 경우 기후의 변화나 환경이 비슷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위도에 있는 경우보다 훨씬 빨리 전파 및 확산할 수 있다는 것이고, 위도의 차이가 있을수록 기후나 환경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우리나라 기후와 적도기후의 차이와 같이) 확산의 속도가 늦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발견된 밀의 경우, 같은 위도에 있는 유럽이나 중국으로 전달되는 속도는 1000년 ~ 3000년 정도로 비교적 짧았으나, 같은 경도에 있는 아프리카 최남단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에는 수천 년이 지나도 밀이 확산될 수 없었다. 작물은 기후에 민감하기 때문에,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과 정글을 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가축의 경우에도 작물보다 제한요건은 덜할 수 있지만, 그와 비슷하게 전파속도에 차이를 보였다. 기술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런 지리적인 현상들을 현대에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이 폴리네시아에 있는 섬들이다. 섬들은 대륙에서 떨어져 나온 섬, 화산이 솟아오른 섬, 석회암이 융기하여 만들어진 섬, 온난한 섬, 추운 환경의 섬 등 각양각색의 환경을 가지고 있고, 그에 따라서 작물화, 가축화에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작물화, 가축화 및 다른 문명의 전파가 잘 이뤄진 섬들의 경우에는 수렵채집민, 부족, 추장사회등의 단계를 거쳐 왕국의 형태를 가진 섬들로 발전해 나갈 수 있었고, 전파가 잘 이뤄지지 못한 섬들은 수렵채집민으로 남거나, 부족, 추장사회 수준으로만 발전하는 모습들을 동시 다발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 보면 왜 유럽에서 아메리카보다 더 복잡한 사회가 만들어져서 스페인 군대가 잉카제국을 멸망시켰는지 알 수 있다. 유럽은 비옥한 초승달지역으로부터 작물화 및 가축화의 결과물이 꾸준히 전파되었고, 이후 가축을 농업에 활용하므로 해서 비옥한 초승달지역보다 더 높은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농업생산량이 늘어남에 따라 인구증가가 촉발되었고, 사회구조가 복잡해짐에 따라 기술 경쟁을 통해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늘어난 인구와 가축의 증가는 전염병을 창궐하게 했고, 동시에 면역성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1520년경 잉카제국의 몰락을 가져왔던 것이다.
그러면 대륙끼리의 싸움에서는 유라시아 대륙이 승리했다 치고, 유라시아 내부를 한번 비교해 보자. 유라시아 대륙 중 왜 유럽이 아시아를 강탈할 수 있었냐는 질문에 대해 알아보자. 중국은 황하문명이 발생한 이래 주나라, 은나라를 비롯해 거의 하나의 제국으로 이어져 왔다. 기원전 220년경에 진시왕이 중국을 통일한 이후로 지금까지 대부분 하나의 나라, 하나의 문명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같은 문자를 계속 사용했고, 황하강, 양쯔강, 그리고 두 강을 연결한 대운하를 통해 하나의 제국을 운영할 수 있었다. 문제는 하나의 제국이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었을 경우, 정책권자가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데 있다. 15세기 유럽이 세계로 팽창해 나가기 1세기 전에 중국은 아프리카로 대규모 선단을 보냈을 만큼의 기술적, 정치적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15세기 전까지만 해도 화약, 인쇄술, 종이 등과 같은 신기술은 중국에서 개발되어 유럽으로 전파될 정도였다. 그런데, 중국에서 해상 탐험 반대론자들이 집권을 하게 되면서, 관련 기술을 모조리 사장시켜 버린다. 그 당시 120미터에 달하는 배를 건조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음에도 전국에 있는 모든 조선소를 없애버림으로써 이후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해 버린다. 중국이 단일 국가였기 때문에 발생한 퇴행 현상은 도처에 나타난다. 진시황 시대의 분서갱유와 1960년대 있었던 문화 대혁명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단일 국가였기에 오히려 문제가 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현상은 비단 중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강력한 총기 기술을 사장시켰던 일본과 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사장시키고 수렵채집민이 되어버린 폴리네시아 일부 부족들에게도 나타날 정도로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와 반대로 유럽은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수많은 집단으로 쪼개져있었고, 다른 집단에 먹히지 않기 위해 서로 경쟁하면서 기술을 키워나갔다. 콜럼버스가 신대륙 발견을 위해 투자를 요청했을 때, 여러 나라들에게 다섯 번 퇴짜를 맞은 후 스페인 국왕에게 투자를 받았다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그 당시 유럽 국가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과정에서 다른 나라와의 기술경쟁 및 자원확보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가 신대륙, 호주, 아프리카 약탈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보면, 내가 처음 한 질문에 대해 답을 할 수 있다.
왜 우리는 일본을 지배하지 못하고, 지배받았는가? 우리나라 역시 중국과 같이 계속 단일 국가를 이루고 있었고, 권력이 한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우리나라 왕들이 얼마나 많은 잘못된 판단들을 쌓아왔는지 알고 있다. 그 수많은 결정들이 우리나라를 약하게 만들었다. 반면에 일본의 경우는 임진왜란 전까지 많은 집단으로 나뉘어 있었고, 유럽과 같이 서로 경쟁하면서 기술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다. 그 결과가 1900년대 초에 나타났고, 우리는 일본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가지 원인이 더 있었겠지만 이 책 총, 균, 쇠를 통해 바라본 원인과 결과가 그렇다는 얘기다.
인간사의 이런 광범위한 얘기를 조목조목 따져 원인과 결과를 찾아준 저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책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 이런 책을 읽느냐고 감탄 섞인 말을 들을 수 있는 책이었다. 책을 사놓고 거의 8년이 넘어 완독 한 책이다. 중간의 어족, 어파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는 자주 잠에 빠져들긴 했지만, 문서에도 없는 내용을 남겨진 말로 유추하는 과학적 노력을 보면서 다시 한번 찬탄했다.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다른 거 다 제쳐두고 저자 이름이 무려 '다이아몬드'다.
얼마나 좋은 내용이 많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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