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나는 친구가 없다

생각파워 2023. 2. 11. 05:31

대학시절 학회장을 하고, 성격 좋다는 말을 끊임없이 듣고 살았다.

인생에 친구가 한 명만 있어도 성공이라는 말을 비웃고 살았다.

그때는 주변에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기쁜 일이 생겨도 술 한잔 기울일 친구가 없다.

 

모임이 없는 건 아니다. 한 달에 나가는 모임 회비만 15만 원이 넘으니, 많은 모임에 속해있긴 하다.

그 모임 역시 10년이 넘은 모임들이지만, 친구라고 부를 사람은 없다.

왜 이렇게 됐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초등학교 때부터였던 것 같다.

누구나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의 이름을 댈 만도 한데, 난 그럴만한 친구가 없다.

매 학년 올라갈 때마다 친구가 바뀌었다. 그리고 이전의 친구들과 다시 놀았던 기억이 없다.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가 있었다.

참 많이 의지하고 친했던 친구였는데, 고등학교가 인문계 실업계로 나뉘면서 헤어졌다.

그렇게 친했던 친구인데, 다시 만나서 놀았을 만도 한데, 다시 만난 기억이 없다.

 

중학교 때 같은 고등학교를 올라오게 돼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었다.

중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을 같이 재미있게 보냈었는데, 

고등학교 올라와서 다시 놀았던 기억이 없다.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 모임이 있었다.

난 대학교를 진학했고, 다른 애들은 취업을 했다.

대학 생활이 너무 재미있어서, 대학생활에만 집중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친구들은 몇 년이 지나도 날 챙겼다.

친구들을 버리고 싶었지만 버리지 못했다.

 

이런 내 성향을 파악한건 얼마되지 않았다.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항상 관계를 새로 시작하려는 성향.

조직이 바뀌면 기존 사람들은 신경 쓰지도 않았다. 신경 쓰는 걸 귀찮아했다.

5년 넘게 함께 일하고, 상사의 부당한 행위에 맞서 싸웠던 동료들과 그 이후에 따로 밥 한 끼 먹었던 기억이 없다.

최근에도 그랬다. 팀을 바꾸게 됐는데, 기존 팀 직원들과 따로 밥 한 끼 먹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난 버리는 게 너무 익숙하다.

 

누가 이런 사람을 좋아할까?

언젠가 대학친구를 만나서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친구 표정이 너무 차가웠다.

얘가 왜 이리 쌀쌀맞지란 생각을 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졸업 후 친구에 대한 내 반응이 그랬었던 것 같다.

그 이후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게 됐다.

나한테 인사하는 사람들의 표정 대부분이 눈만 웃고 있었다.

내가 저 사람들에게 저런 미소를 보냈나 싶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내가 정리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리당하는 건 나였다.

 

아이들의 사회생활은 아버지를 닮는다고 했다.

아버지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아버지는 학교를 다닌 적도 없고, 환경미화원으로 일하셨고, 술을 하지 못하고, 성격도 많이 소심한 편이셨다.

형수에게 학대를 당했고, 형제들에게 버림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친구가 없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내게 친구가 없음을 아버지 탓으로 돌리기도 했었다.

'아이들의 사회생활은 아버지를 닮는다고 했다'라는 말을 빌미로.

어느 정도, 아니 많은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난 알바 한번 하지 않고 학교를 다녔고, 집안 살림이 쪼들렸음에도 학회장을 했다.

중고등학교 6년, 대학 7년을 친구들과 놀 궁리만 하고 다녔다.

이후 결혼 전까지도 계속 놀 생각만 했다.

이런 상황에 친구 없음을 아버지 탓으로 돌린다는 건, 정말...

 

내게 친구가 없는 이유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적고 보니 정말 없을만하다 싶다.

나 스스로 만든 상황이기에, 내 외로움은 인터넷의 외로움에 대한 글들이나, 사람은 혼자 왔다 혼자 간다는 말로 위안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걱정스러운 건, 내 외로움이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질까 봐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아이들에게까지 이런 고통을 물려줄 순 없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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