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설거지 할 때 고무장갑을 안끼는 이유

생각파워 2023. 2. 7. 23:41

맨손으로 설거지하는 나를 보면 와이프는 고무장갑 끼고 하고, 웬만한 건 식기세척기를 쓰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면 손목이 덜 아프고 손이 좀 부드러워 지리라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뜨거운 물로 두 번을 헹군 식기세척기의 문을 열면 폭발하는 수증기와 딱히 좋다고 할 수 없는 냄새가 난다. 쓴 지 하루쯤 지난 행주에서 나는 냄새랄까? 3년 된 식기세척기의 문제일 수 있다. TV에 나오는 투명한 창을 가진 식기세척기면 믿을 수 있으려나? 어쨌든 지금 난 식기세척기를 쓸 수 없다.

 

물에 푹 담가 충분히 불린 식기를 씻는 일은 마음의 안정을 줄 정도로 순조롭다. 세제를 묻혀 거품을 낸 수세미를 힘주지 않고 부드럽게 문질러만 줘도 식기는 매끄러운 얼굴을 되찾는다. 가끔 화가 난 밥풀이 수세미를 멈칫하게 만들지만,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면 이내 화가 풀린다. 나에게 설거지는 작은 수행이다.

 

크든 작든 수행에는 고난이 따른다. 역시나 나에게도 고난이 찾아왔다. 물마를 날 없던 손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심각하진 않지만, 나의 수행을 적잖이 방해하고 있다. 와이프 말대로 고무장갑을 끼면 될 일이다. 식기의 상태를 감지하는 능력은 떨어지겠지만, 내 손을 잡는 아이들에게 부드러움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이틀 할 일이 아닌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시작됐다.

 

장고 끝에도 결국 난 고무장갑을 낄 수 없었다. 식기와 손가락 마찰에서 느껴지는 뽀드득~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 감촉과 소리는 나에게 청량함을 선사한다. 청결을 소리로 표현한다면 저 소리가 아닐까?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지금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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