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터지면 유머, 안 터지면 역적!

생각파워 2023. 2. 16. 08:05

어려서부터 말로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있었다. 대화 도중에 딱 떠오르는 말을 탁하고 치면 사람들이 빵 하고 터졌다. 대학 때는 몇 시간 동안 이어지는 술자리 내내 사람들을 웃겼던 적이 많았다. 다들 나와 함께하는 술자리를 하고 싶어 했고, 나 역시 그런 술자리가 너무 좋았다.

 

사람들을 웃기는 건 좋았지만, 그런 술자리 후에는 항상 다른 사람에게 미안한 일이 생겼다. 일단 말로 사람을 웃기려면 말을 많이 해야 된다. 거기다 적당한 오버와 비하 등이 들어가게 된다. 상대방의 기분이 좋으면 유머가 되겠지만, 안 터지면 역적이 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술이 깨지 않은 상태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어제 일을 복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내 머리를 감싸 쥔다. 어제 오버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타깃으로 삼은 사람을 너널너덜할 때까지 웃음 소재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사과의 전화나 문자를 하는 게 술자리 다음 날의 내 첫 일과였다. 그래도 난 웃음을 만드는 능력을 사랑했고, 그런 상황은 이후로도 오래오래 계속되었다. 항상 얘기하지만 난 철이 없다.

 

개인적인 성격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 결혼 육아에 치여 술자리도 차츰 줄어갔다. 동시에 내가 하는 말도 줄어들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 외롭지만, 동시에 좋은 것도 있다. 술자리 다음날 마음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말이다. 요즘 들어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말을 많이 해서 좋을 건 별로 없는 것 같다. 말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마음은 가벼워지고, 내 존재는 무거워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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