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육아일기

아이들 옷과 헤어지기

생각파워 2023. 2. 26. 22:10

세탁물을 정리하다 보면, 수명을 다한 옷들이 보인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기름기가 빠지고 건조해지듯이, 세탁물도 물이 빠지고 뻣뻣해진다. 그런 느낌을 받은 주말에는 어김없이 아이들의 옷 한두 봉지가 재활용쓰레기에 놓인다. 재활용과 음식물을 버리러 갈 때 가져가서 의류수거함에 넣게 되는데, 이 과정이 나에게는 좀 곤욕스럽다.

 

반투명의 봉지를 신경 쓰지 않듯이 바라보지만, 짧은 순간 이미 내 눈은 봉지 속 내용물의 스캔을 끝낸다. 그리곤 버리고 싶지 않은 옷을 발견하고 가슴이 철렁한다. 저 옷을 떠나보내야 하다니... 저 옷을 입은 아이의 모습이 너무 이뻐서 내 머릿속에 완벽하게 각인된 옷인데... 느낌이 사람과 헤어지는 것 못지않다.

 

아내라고 시원한 마음으로 보내는 건 아닐 거다. 아이를 싸맨 그 옷의 감촉을 얼마나 많이 느꼈을까? 아이의 냄새가 깃든 옷의 냄새가 좋아 얼마나 숨을 들이켰던가? 보내야 다른 옷을 넣을 공간이 생기기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재활용 쓰레기들 중에서 제일 깨끗한 구역에 아이들 옷을 넣는다. 다시 한번 열어젖혀 냄새를 맡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참아낸다. 모양새가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을 테니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서 30미터도 안 되는 재활용품장을 갈 때도 가급적 눈을 안 마주치려고 노력한다. 

 

다른 쓰레기를 모두 분리수거하고, 마지막으로 그 봉투를 안고 의류수거함 앞에 선다. 잠깐의 망설임을 느낀 후, 주변시를 이용해 옷을 재빨리 수거함에 넣는다. 혹시나 뒷모습을 보고 미련이 남지 않을까 두려워 옷을 뭉터기로 집어 강하게 밀어 넣는다. 다 넣은 후에 아주 잠깐 기도한다. 우리 아이 아무 일 없이 크게 도와줘서 고맙다고.

 

세월이 흐를수록 헤어짐의 무게가 크게 다가온다. 그게 사람이든 물건이든 가리지 않는다. 앞으로 만남보다 헤어짐이 많을 텐데, 그 많은 무게를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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