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육아일기

소리 지르고 때리는 아이 - 오은영 실전편

생각파워 2022. 11. 6. 00:59

똑똑하고 이쁘고 귀염성 많은 둘째의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둘째의 행동이 민감해졌다고 들은 건 화창했던 오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즈음 둘째는 어린이집이 가기 싫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어린이집을 들어갈 때도 가기 싫다고 대성통곡하는 날이 많아졌다. 집에선 가족들에게 물건을 던지기 일쑤였고, 언니를 때리는 일도 잦아졌다.
일춘기려니 했었다. 첫째처럼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 했었다. 둘째에게 신경을 부쩍 쓰기 시작했다. 좋은 쪽으로, 또 나쁜 쪽으로도.
아이를 보듬어 줘야 된다는 생각에 아내가 둘째를 많이 챙겼다. 같이 있는 시간을 늘리고 애정표현도 많이 했다.
반면에 난 강공책을 썼다. 아이가 소리를 지르면 더 큰소리로 윽박질렀고, 물건을 던졌을 때는 던진 물건을 다 갖다 버리기도 했다. 생전 애들 몸에 손댄 적이 없는 나였는데, 어느 날은 너무 화가 나서 효자손으로 다리를 한 대 때렸다. 약하게 때렸지만 충격은 컸을 테였다.
아이는 더 심해졌다. 매일매일 통곡이었고, 비명이었고, 폭력이었다. 우리 부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지난달 심각하게 둘째 얘기를 꺼내는 담임선생님에게 원장님과 같이 면담을 요청했다. 둘째를 문제아처럼 만들 순 없었다.
원장님은 귀를 막고 비명을 지르는 상황을 얘기하며 청각검사를 얘기했고, 담임은 우리가 뭔가를 해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모든 걸 둘째 탓으로 돌리는 것 같아 화가 났다. 같은 반에 있는 발달이 느린 한 아이의 잦은 폭력적인 행동이 원인이 될 수 있으니 분리해 달라고 얘길 하고, 둘째가 말을 너무 잘하고 똑똑해서 40개월이 된 아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건 아닌지 돌아봐 달라고 이야기했었다. 최대한 화를 억누르면서.
집으로 돌아온 후 와이프는 둘째에게 더 애틋해졌다. 난 아이에게 계속 따뜻한 물과 찬물을 퍼부어댔다.
한 달 전쯤 또 짜증과 비명을 지르는 아이에게 화를 낸 후 혼자 씩씩거리고 있는 나에게 아이 엄마가 책을 내밀었다. 읽어보라고.
일 년쯤 전 읽어본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였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되는 내용이 많아서 몇번 더 읽어봐야지 생각했던 책이었다. 읽어보라고 표시한 부분을 펼쳐보니 화내는 아이에 대한 내용이었다. 어떤 부모가 화내고 못참는 아이를 만드는 지에 대해 상세히 적혀있었다.
전부 내 얘기였다. 민감한 부모, 화내는 부모, 못참는 부모… 그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느낌까지 한꺼번에 떠올랐다.
올해 들어 난 심각한 슬럼프를 겪었다. 직장동료와의 불화는 회사생활을 힘들게 할 정도였고, 가족과의 불화는 내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나쁜 감정을 날려버리기 위한 과도한 운동은 혼자 일어나기 힘든 허리 통증을 선사했다. 그런 몸과 마음으로 하는 육아는 예년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
지친 몸과 마음은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했고, 그 화는 가장 연약한 아이들에게 향했다. 그때가 5월 언저리였던 것 같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란 생각과 후회가 밀려왔다. 밤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조그맣게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보고, 내가 그렇게 화를 냈던 아이가 저렇게 작았었나 싶었다. 아이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가슴이 아렸다.
다음날부터 난 아이에게 화내지 않았다. 아이가 물건을 던지면 좋은 말로 타일렀고, 비명을 지르면 무슨 일인지 차분하게 물었다. 무엇보다 공감을 하려고 애썼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건, 아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겁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무서운 일이 생길 것 같으면 귀를 막고 비명을 질렀다. 자기방어였던것 같다. 그래서 비명을 지르면 안아주고 괜찮다는 말로 위로해줬다. 물건을 던지거나 폭력을 행사했을 때도 왜 그런지 물어보고 안아줬다. 아이가 안정되면 그러지 말라는 말과 함께.
내가 아이를 괴롭힌 시간이 꽤나 됐었기에 아이의 변화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변화는 훨씬 빨리 왔다. 내가 변한 지 2주쯤 되자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갈 때 우는 강도와 빈도가 확연히 줄었다. 일주일 전쯤에 담임선생님에게 아이가 너무 많이 좋아졌다는 알림장을 받았다. 와이프는 감동했고, 난 지난 내 행동을 또 한 번 반성했다.
어젠 책을 읽어달라고 가져와선 내 팔에 꼭 안겼다. 그리고 오늘은 자길 안고 있는 내 볼에 입을 맞춰줬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너무 감동스러워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다.
아이는 요즘도 짜증이 나면 비명을 지르고, 물건을 던지고, 언니를 때린다. 그래도 이젠 아이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들린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란 말이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난 이제 밝은 거울을 만들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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