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시절, 밤 10시가 넘어 개그콘서트의 엔딩곡이 울려 퍼지면 우울해졌던 기억이 있다.
그 음악은 나에게 내일이 월요일임을 알려주는 자명종 같은 것이었다.
북적이는 출근길, 해야 할 일들, 껄끄러운 일들이 확 몰려들었다.
그 느낌은 정말 병이라 부를만한 것이었다.
오늘 문득 내일이 월요일인데 왜 병이 안 찾아올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월요병을 느껴본지도 참 오래된 것 같다.
뭘까? 왜 이 병이 씻은 듯이 사라진 걸까?
이유를 찾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주말이 되면 주중에 쌓였던 일들을 시작한다.
청소, 빨래, 설거지... 해야 할 일은 끝도 없다.
그 많은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두 딸들과 놀아주는 일이다.
평일엔 아침 9시에 어린이집을 가서, 저녁에 돌아오면 밥을 먹고 잠깐 놀다 자는 일상의 반복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놀 시간이 없다.
미안함이 차오르고, 아이들의 짜증도 극한으로 치닫는 금요일이 되면, 내일 놀이공원을 가자, 여행을 가자 하는 말이 자동으로 나온다.
누구를 닮아서인지 아이들은 우리가 미안함에 내뱉은 말들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기억한다.
그리곤, 주말엔 평일 아침보다 한두 시간 빨리 일어나서 우리 부부를 채근한다.
삼각김밥전문점에서 산 삼각김밥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두 잔 뽑아 차에 싣고 달린다.
아이들의 입에 스팸 삼각김밥을 몰아넣고, 모자란 잠을 아메리카노로 채운다.
오늘은 곤충체험장이다.
곤충도 보고, 양서류도 보고, 파충류도 보고, 조류도 보고, 포유류도 본다.
포유류에게 밥 먹이는 체험을 하고, 사진을 찍고, 곤충과 상관없는 공룡을 만든다.
대부분의 시간 4살 둘째는 내 팔에 안겨있다.
3층짜리 건물과 실외를 모두 섭렵하고, 늦은 점심을 먹는다.
유명한 집이라 사람이 많다.
아이들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물을 쏟고, 휴지를 뽑아대고, 소리를 지른다.
화를 냈다가, 차분하게 얘기했다가... 아이의 반응에 따라 내 반응도 따라간다.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 됐을 때, 와이프와 눈을 마주친다.
그리곤 아이들을 유튜브의 세계로 보내버린다.
그나마 조용하게 잔반 처리를 하고 가게를 나선다.
돌아오는 길에 둘째가 잠이 들면 잠깐의 소강상태가 된다.
잠깐이지만 차창의 풍경도 볼 수 있고, 이제는 형제 같은 와이프의 손을 잡을 수도 있다.
집에 돌아오면 첫째를 데리고 놀이터로 갔다가 둘째가 깨어날 때쯤 저녁을 먹는다.
아이들을 씻겨 재우면 아침에 치운 게 맞나 싶은 집이 우리를 맞이한다.
빨리 치우고 맥주 한잔을 노려보지만, 그게 이루어지지 못할 꿈이란 걸 우리 부부는 잘 알고 있다.
토요일을 이렇게 보내고 나면, 일요일 저녁이 기다려진다.
일요일 저녁 10시가 넘으면 마음이 차분하고 평화로워지는 걸 느낀다.
내일 회사에 힘든일이 있어도,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라며 웃으며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월요병은 치료되었다.
그리고 난 언제까지나 월요병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탈모치료의 시작 (1) | 2023.01.31 |
---|---|
아이는 부모의 거울 (0) | 2022.12.30 |
어머니와 딸 (0) | 2022.10.23 |
뜬금없는 애플뮤직 결제. 구독 취소 및 환불 - 안보일 땐 진짜 안보입니다 (0) | 2022.10.21 |
허세 (0) | 2022.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