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어머니와 딸

생각파워 2022. 10. 23. 08:03

하루에도 몇 번씩 딸은 갖고 싶거나 먹고 싶은 걸 이야기한다.
포켓몬 카드, 아이스크림, 머리띠, 솜사탕... 끊임이 없다.
하루에 한두 개 정도는 사주는 것 같다.
사 주진 않은 것들은 리스트에 저장된다.
그것들은 우리 부부의 숙제가 되고, 언제든 숙제가 마무리돼야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다.
얼마 전 끝낸 가장 큰 숙제는 제주도 여행이었다.
봄에 친구가 갔다 왔다는 얘길 들은 딸은, 그때부터 제주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돈을 좀 모아서 내년에 해외를 가자고 얘길하고 있었던 때라, 안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압박을 이길 수 없어서 2박 3일을 여행했다.
모든 부모가 다 그렇듯, 우리에겐 아이들이 0순위다.

칠십 중반을 넘긴 어머니에겐 아직도 많은 것을 받고 있다.
하루 몇 시간씩 아이들을 돌봐주시고, 일주일에 몇 번씩 음식을 해다 놓으신다.
철마다 아이들 옷을 사주시고, 여행을 갈 때는 음식값 걱정 안 할 만큼 돈을 주시기도 한다.
한마디로 아직까지 등골을 빼먹고 있는 중이다.

어머니랑은 자주 밥을 먹는 편이다.
자주 가는 두세 곳에서 밥을 먹는데, 갑작스럽게 가게들이 쉬는 바람에 다 못 가게 됐다.
갑자기 어머니가 무한리필 게장집으로 가자고 하셨다.
평상시에는 거의 애들 위주로 음식을 선택하라고 하셨는데, 오늘은 아주 약간의 주장이 섞여있어서 게장집으로 갔다.
8000원에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을 무한 리필해 주고, 매운탕도 주는 집이었다.
여수에 있는 돌게장 집의 컨셉을 가져온 가게였다.
5년쯤 전에 먹어보곤, 먹을 만했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오늘 음식은 정말 최악이었다.
비린내 나는 간장게장, 맵기만 한 양념게장, 짜기만 한 매운탕, 하나같이 손이 가지 않는 반찬들.
공깃밥 한 그릇을 억지로 비우고 나오면서 엄마가 작게 말씀하셨다.

"예전에 니가 사 준 그 맛이 아니네."

예전에 여수에 가족여행을 가서 돌게장 정식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 게장은 포장이 가능해서 여수에 들를 때 가끔씩 사다 드린 적이 있었다.
음식을 좀 가리시는 어머니신데, 그 게장은 참 맛있게 드셨다.
요즘은 여수에 있는 돌게장 집이 인터넷 판매를 시작해서 빠르게 배송받을 수 있다고 들었다.
빨리 시켜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로 회사일, 어린이집 문제, 아이 감기 등이 겹쳐서 바쁘게 지냈다.
중간에 와이프가 돌게장 집 사이트에 접속해서 주문을 하려고 했는데, 두세 번 결재 오류가 떠서 하지 못했다.
내가 한다고 해놓고 미뤘다가, 그저께 전화주문을 했고, 어제 돌게장과 갓김치를 받았다.
저녁에 모여 앉아 먹었는데,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시며, 너무 좋아하셨다.
나도 맛있다며 열심히도 먹었다.

본가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왔는데, 마음이 조금 착잡했다.
게장을 주문하는 데는, 계좌이체를 다 합쳐서 10분도 안 걸렸다.
어머니가 먹고 싶단 건 숙제로 안 느껴졌었나 보다.
어머니를 볼 수 있는 날을 생각해 보면...

이제 잘 챙겨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 동시에,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나중에 얼마나 후회하게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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