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이 순례길을 걷고 있었다. 메마른 땅은 걸음을 디딜 때마다 먼지를 일으켰다. 뙤약볕에 몇 시간을 걸었던 청년은 심한 갈증을 느꼈다. 물병을 쥐어짜 보지만 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때, 저 멀리 언덕 위에 뭔가가 움직였다. 사람인 것 같았다. 물을 얻어먹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가까이 다가와 보니 얼굴이 새카맣게 그을린 노인이었다. 노인은 청년이 다가가도 별다른 반응 없이, 하던 일을 계속했다. 작은 삽으로 땅 위에 구덩이를 만들고, 어깨에 맨 주머니에서 도토리 알을 하나 꺼내 심었다. 그 위에 물을 뿌린 후 몇 발을 건너뛰어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이렇게 가문 날에 도토리 심기라니, 조금 이상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물을 좀 달라는 청년의 요청에 노인은 흔쾌히 응했다. 갈증이 가시자, 궁금증이 몰려왔다.
"왜 이렇게 척박한 땅에 도토리를 심으십니까?"
방금 심은 도토리 자리를 내려다보며 긴 한숨을 쉰 노인이 말했다. 노인에겐 아내와 딸이 있었지만, 모두 잃었다고 했다. 노인이 사는 마을은 시냇물이 흐르는 숲을 가진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어느 순간 시냇물이 마르고, 숲이 사라졌다고 했다. 사람들도 떠나갔다. 아내와 딸을 되살릴 순 없겠지만, 마을은 되살리고 싶다 했다. 그게 자신이 살아있는 유일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노인은 하루에 100개씩 튼튼한 도토리만을 골라 심는다고 했다. 100개 중 10개, 아니 한두 개만 싹을 틔워 준다면 마을이 되살아나고, 떠났던 사람들도 돌아올 거라고 했다.
청년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노인의 심정은 이해가 되었으나, 쉽사리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메마른 땅에 싹이라니... 청년은 노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섰다. 노인은 차분하게 계속 도토리를 심어 나갔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왜 되지도 않을 일을 저렇게 열심히 하는지. 청년은 노인이 미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5년 후 전쟁이 발발했고, 청년은 입대를 했다. 열심히 싸웠다. 많아 사람이 죽어나간 전쟁이었지만 청년은 살아남았다.
몇 년 후 청년은 다시 순례길에 올랐다. 청년은 메마른 길을 지나다가, 도토리를 심고 있는 노인을 다시 만났다. 노인은 예전과 다름없이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이었다. 짙어진 백발을 제외하면 달라진 건 없어 보였다. 되지도 않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노인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났다.
"이제 그만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싹을 틔우지 못하지 않습니까?"
노인은 청년을 가만히 지켜보며 미소 지었다. 노인은 청년에게 따라오라고 말했다. 한참을 걸어가니 물소리가 들려왔다. 아름드리나무들이 있는 숲이 나타났다. 숲에 둘러싸인 마을도 보였다.
"여긴 어디죠?"
10여 년 전 도토리를 심던 자리라고 했다. 나무가 자라자 시냇물이 생겼고, 동식물이 몰려들었다 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돌아왔다고 했다. 노인은 이제 다른 황무지에 나무를 심는다고 했다. 청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무 심는 사람'이라는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단편소설을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 본 것이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 읽었던 책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꾸준히 노력하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교훈을 받았었던 것 같다.
요즘 투자에 집중을 하다 보니, 내용이 다르게 읽힌다. 노인은 장기투자자다. 남들이 보면 답답해 보이는 방법을 수십 년 동안 계속했다. 앞으로도 계속할 거고. 그리고 노인은 정액 투자법을 시행하고 있다. 하루에 100개씩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투자를 진행했다. 장기적으로 정액 투자를 했기 때문에, 평단가는 상당히 낮아졌고, 100%의 확률로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꼬리 이론도 있다. 100개 중에 한 두 개만 성공해도 100개를 보완하고도 남는다. 도토리나무 하나에 몇 개의 도토리가 열릴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노인은 확신과 인내심도 가지고 있다. 그걸 가진 사람만이 황무지에 수 십 년 동안 도토리를 심을 수 있을 것이다. 노인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이론으로 무장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가치투자자다. 노인의 모습에서 투자 대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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