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서를 읽을 때 벤저민 그레이엄, 워런 버핏, 피터 린치, 코스톨라니와 같은 분들의 글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투자에서는 통찰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분들의 책은 인문학적인 요소가 강한 느낌이다. 스토리가 있고, 수식은 적어서 머리에 남는 것과는 별개로 술술 읽힌다. 그래서 더 이런 유의 책을 찾게 되고, 난 대가들과 소통하기 때문에 투자실력이 월등해지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 같다. 실제론 investing.com을 통해 미국 주식을 핥아주고, 국내 증권사의 MTS를 통해 주식을 매수하는 것 외에 미국 증권시장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려 해도, 영어의 바다를 헤매야 하기 때문에 겉모습만 보고 투자할 수밖에 없다.
'뉴욕주민의 진짜 미국식 주식투자'는 내가 읽던 책들과는 결이 좀 다른 책이다. 일단 영어 단어가 많이 나오고, 도표도 많이 나온다. 수포자가 미분 책을 본다면 이런 느낌일까? 근데, 생각보다 쉽게 읽힌다. 중간중간 고비가 오긴 한다. 재무제표로 기업가치를 계산하는 부분은 아직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돌아와서 다시 읽기를 반복했지만, 계속 읽는다고 미분이 이해되던가?
그래도 몇 가지는 건진 것 같다. 필요한 자료를 어디에서 확인해 볼 수 있는지. IPO가 어떤 의미이고,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는지. 미국 시장을 왜 공정하다고 얘기하는지. 그리고 내가 경쟁해야 될 대상이 얼마나 괴물들인지... 위에서 말한 대가들의 책을 읽고 나면, 부자 되기 참 쉽네란 생각이 들었다. 책 몇 권 읽고 와이프에게 5년에 10억 벌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었다. 워런 버핏, 피터 린치만 따라 하면 껌이지 뭐.
책 말미에 헤지펀드 트레이더의 하루가 나온다. 그의 24시간은 밀도가 달랐다(드라마에서 기억에 남은 대사였나 보다). 어닝시즌에 하루 수십 개의 기업을 평가한다. 어닝시즌이라는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기업 당 수백 쪽의 공시자료, 벨류에이션 계산 등을 병렬로 해나가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런 그가 나의 맞은편에 앉아 있다. 그는 방탄복에 총, 칼, 미사일 등으로 완전 무장을 하고, 난 팬티에 막대기 하나 들고 매치 중이다. 개미, 개미 하더니 밟아 죽이기 너무 쉬워서 개미였나 보다. 지금 알았다. 투자를 시작하고, 내 모습이 이렇게 객관적으로 보였던 적이 있었나 싶다. 난 지금 꽃길 따라가는 게 아니라, 던전을 헤쳐나가고 있다.
워런 버핏, 피터 린치가 옆집 아저씨 같았는데, 그분들이 어디에 있는지 이제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모든 그림을 마스터한 작가가 간단한 선과 점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런 그림은 나도 그리겠다고 큰소리치는 내 꼴이라니. 쓰다 보니 자기 비하가 돼 가는 것 같다.
책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바로미터 같은 책이다. 내가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자주 열어보고 참고해야 하는 참고서 같은 책이다. 십수 년의 경험과 통찰을 바로 흡수할 수는 없겠지만, 엇비슷하게 따라 하다 보면, 어렴풋하게 작가가 보는 길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인문학적 투자서적을 좀 더 쉽게 읽게 만들어 주는 건 덤이다. 그 내용의 심오함은 예외로 하고 말이다.
하나 더, 뉴욕주민의 유튜브를 많이 본 사람이라면, 글을 읽으면서 뉴욕주민의 억양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엄청나게 공부 잘한 것 같은 영어 발음을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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